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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03:04

올바른 글읽기

조회 수 7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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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제가 2006년 7월 15일 어느 동호회에 올렸던 글 입니다.
다시 보니 좀 헤메긴 했어도 그냥저냥 읽을만은 하네요.^^
다만 제 글 속에 에고가 정말 많이 작용하고 있었군요. 이글을 여기에 옮기는 이유 중에는 그런 반성의 의미도 있습니다.
지금 똑같은 주제의 글을 쓴다면 설마 이렇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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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접하게 되는 글이나 말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해볼 겁니다. 인터넷, 신문, 방송, 잡지,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쏟아지는 많은 글과 말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과연 이 신문 기사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무슨 목적으로 쓰여 졌을까? 우리에게 유리한 것인가 불리한 것인가? 이에 따른 우리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참 많은 것들이 순간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의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세워야 합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어떤 말을 했는지 또는 글을 썼는지. 정확한 판단은 정확한 분석에서 출발합니다. 분석이란 과연 무엇 입니까? 여기서는 학문적인 것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일상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를 보아야 하겠지요.


그것은 "올바른 글 읽기"에서 부터 출발 합니다. 말도 올바른 글 읽기가 가능해야 순간적인 분석을 통해서 화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주장을 담은 글이나 말을 읽고 정확한 분석을 하기위한 준비단계가 올바른 독서입니다. 아니 다 큰 어른들에게 지금 독서법을 가르치려 들다니 하고 불쾌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으로 그것을 제대로 훈련 받은 어른들은 애석하게도 그리 많지가 않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인 작문을 하던지, 수능수준의 글짓기를 할 때 과연 몇 명의 학부모가 제대로 지도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읽고, 그 즉시 우리에게 과연 이 기사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나 존재 할까요?


올바른 글 읽기는 글을 어떤 것으로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즉 글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올바른 글 읽기”의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고민을 1989년도 초부터 머리를 싸매고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겠다 다짐을 하고 침묵하는 시간을 몇 달 동안 가졌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저에게 말을 시키려고 무던히 애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참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더군요. 당시 저는 학사 편입을 해서 제 일생에 두 번째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기숙사에서 4년 가까이를 생활 했었지요. 그 때 연구한 것이 “언어기호학”이란 학문 이었습니다. 18세기 스위스 언어학자인 “소쉬르”로부터 구체적인 학문으로 구축된 기호학에서 파생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문학기호학”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17년 전 침묵 수행(?)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는 “올바른 글 읽기”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닥쳐올 수많은 판단의 기초요, 그것을 통해 수반되는 행동이 올바를 수 있는 근본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명제였습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그 전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글은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글은 살아 숨쉬는 것이기에 기승전결과 같은 틀에 넣고 획일화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결과(기승전결)를 향해 나아가는 지루한 독서를 할때 저는 저만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어쩌면 글쓴이 자신도 깨닫지 못했을 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독서법을 발견 한 것이지요.


과연 기호학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런 획기적인 길을 열어 주었을까요.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제가 올리는 글을 읽으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우선은 글 즉, 우리가 흔히 텍스트라 부른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요.


텍스트란 “원문”, “본문”으로 많이 번역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의 원 뜻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드리고자하는 말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text” 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textus”입니다. 이 말은 “texere”(베를 짜다. 직조하다)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이 말에서 현대 영어의 tissue(조직), textile(직물, 옷감) 등의 낱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즉 텍스트의 원뜻은 “직조된 것, 짜여진 것”이란 의미입니다. 텍스트란 씨실과 날실로 잘 짜인 직물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텍스트라는 개념은 문필적인 텍스트에 국한 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산물(글로 씌여진 것, 말로 된 것, 심지어 그림으로 그려진 것까지)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텍스트란 단지 획일적으로 정해진 수순에 의해서 그 의미가 파악 되는 것(기승전결과 같이 이야기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거쳐 반드시 글의 마지막에 필자가 주장하고자하는 결론이 있는)이 아니고 텍스트를 읽고 있는 내가 지금 여기(now and here, 시공의 현실성) 나에 의해서 다시 짜여지는 직물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은 읽을 때마다 달리 해석 되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장은 살아 있는 대상이 되고 독서를 통해서 나는 새로운 글을 창조해 나가는 능동적인 글 읽기가 가능해 지는 것이고 결국 내가 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의 분석이 가능해지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해석한 글의 의미가 올바른지를 스스로 검증하면서 다음 행동을 위한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마련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씨실과 날실로 분리를 해서 다시 짤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텍스트에 등장하는 행위자와 그 행위자가 속한 공간구성, 행위자가 영위하는 시간의 구성을 잘 살펴서 각 구성요소간의 관계성과 차이,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모든 글이나 말은 어떤 결핍의 발견으로부터 생성됩니다. 행위자가 발견한 결핍상태를 그 놓여진 공간 안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시간구성)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글읽기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단, 여기서 행위자라 함은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무생물이 될 수도 있고, 또 개체가 아닌 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글의 주체" 또는 글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2006년 7월 11일에 올린 “우려가 현실로”라는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글은 연합뉴스를 인용해서 제가 다시 쓴 글입니다. 그 기사에서 보면 오직 이 기사가 생산된 원인은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겠습니다.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측 수석대표는 지난 10일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공교육 시장에는 관심이 없지만 인터넷 교육서비스와 SAT(미국대학수능시험) 등의 시장접근에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 단 한마디를 분석한 것이 기사의 전부 였습니다. 우선 이 텍스트에서 행위자는 누구입니까? 기자 회견자인 웬디 커틀러는 아니지요. 화자인 웬디 커틀러에 의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행위자로 등장합니다. 그럼 공간과 시간 구성은 어떤가요? 공간은 우리나라입니다. 그중에서도 교육 시장(온라인과 SAT 시장)에 국한 된 듯 보입니다. 시간 구성은 어떻습니까? 몇 년에 걸쳐질 내용이겠지요. 많은 시간의 흐름이 보입니다. 그럼 이 텍스트에서 결핍사항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우리나라 공교육시장이 아닌 “온라인과 SAT 시장”에서의 미국의 시장 접근성이 결여 되어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일견 보자면 단순히 결핍의 해결은 없고 제시만 된 듯 보이지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냥 한마디 툭 던진 말일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정말 이 텍스트는 잘 짜여진 직물입니다. 그것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치 아랍의 양탄자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의 핵심은 SAT에 있었습니다. SAT란 단어 한마디가 엄청난 의미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교육 근간을 흔들고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뒤 흔들 파괴력을 가진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신들의 식민지가 아닌 주권이 엄연히 살아있는 다른 나라에 와서 함부로 할 수 있는지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한번 살펴보지요. SAT의 언급은 우리나라 대학입학 제도를 미국이 내정간섭하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입니다. SAT의 시간, 공간 구성을 보십시오. SAT는 아시다시피 미국 대학 수학능력 시험입니다. 기초적인 능력을 테스트 하는 것으로 과연 이 학생이 대학에 들어와서 수업을 잘 받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일종의 자격 시험입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여러가지 판단 기준 중에 하나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가려면 토플이나 토익 고득점을 기본적으로 따서 ELS 없이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우회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에서 공인해주는 SAT를 우리나라에서 직접 본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토플이나 토익을 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어차피 토익이나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도 SAT는 다시 봐야 하기 때문에 SAT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시간적, 공간적 이익(SAT시험을 보러 미국에 안가도 되니)을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학원이나 대학들이 앞다퉈 SAT를 채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됩니다. 따라서 공교육 시장인 중고등학교는 자연스럽게 SAT를 위한 과목이 증설 될 것이고 SAT의 세부 과목인 “언어(비판적 독해), 수학, 작문(글쓰기)”에 수업 중심이 맞춰 질 것입니다. 여기에 SAT의 시간과 공간 구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교육 전반이 영어 작문과 독해 그리고 미국식 수학에 쏠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역사보다는 SAT 영어 독해를 위해서 미국의 역사를 더 알아야하고 우리나라 국어보다는 SAT 영어 작문을 더 잘 해야하고, 우리나라 말로된 수학 보다는 영어로 된 수학 용어에 더 익숙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SAT의 공간 구성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전체가 되는 것이고 SAT의 시간 구성은 몇 년에 걸친 미국식 교육 시스템으로의 우리나라 교육이 전이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들을 잘 뜯어보면 결국 텍스트의 행위자인 미국은 우리나라 공교육에 관심 없다고 한 말 자체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난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텍스트의 결핍에 대한 해결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미국의 접근성을 보장 받기 위해서(실제 행위자의 결핍사항) SAT가 필요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미국은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을 통째로 변화 시키겠다는 의도입니다. "우리 미국은 너희들 안방에는 관심이 없는데 열쇠는 하나 복사해줘." 그것도 국내외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그들의 진짜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게 선전포고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가 단순하게 글을 읽지 않고, 글을 텍스트로 생각하여 잘 짜여진 직물의 씨실과 날실을 다시 분해해서 내가 지금 여기에서(now and here) 다시 텍스트를 분석하여 읽는다면(다시 직물을 짠다면) 그 텍스트의 행위자가 드러나고 그 행위자가 속한 시간과 공간 구성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왜 필자가 이 텍스트를 썼는지 또는 말을 했는지를 알기 위한 “결핍사항”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 결핍사항이 어떤 식으로 텍스트에서 제시된 시간과 공간 구성 안에서 해결되고 있는지를 유심히 보는 것이 바로 제가 오늘 말씀드린 “올바른 글 읽기”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야 말하는 또는 글쓴이의 의도를 올바로 분석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야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간단한 텍스트를 가지고 올바른 글 읽기를 해봤습니다. 사실 언어기호학이나 문학기호학에서는 오늘 소개해드린 것 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한 인자들을 가지고 분석을 합니다. 이 분야는 즐거운 글읽기, 주체적인 글 읽기, 창조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위한 글 읽기를 위한 여러가지 기법들이 잘 발달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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