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비 오고 바람불며 모두를 움츠리게 하더니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하기 만 한 휴일 아침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처럼 온몸을 태우고 있다. 오늘이 이 세상 에서 최고의 날이 되겠다고 몸부림 치는 듯 사방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이 가을의 마지막 모습이다.
묽게 물들었던 잎새들이 차가워진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내 마음도 함께 그렇게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전해온다.
"저 벤치에 그대와 나란히 앉아 함께 붉게 물들고 싶습니다."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 / 김용택]
모든 존재는 하나의 나뭇잎처럼 홀로 태어나 무리를 이루고 살다가 다시 홀로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마다 한 잎씩 돋아나고 떨어지지만 그 하나하나는 세상과 함께 엉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생각하게 하여주는 한장 한장의 잎새들이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 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니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김민부 시인이 쓴 '기다리는 마음' 이란 詩이다. 장일남 작곡으로 많은 성악가들이 불러서 익히 알고 있기도 한 가곡이다. 연못에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는 저 두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늦가을을 보내고 있을까..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