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기억

by 달봉스님 posted May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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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가세션을 하다가 뜻밖의 일이 생겨서 몇 자 또 적어봅니다.

오늘은 생활 중에 많이 불안하고 불편했습니다. 요즘 전보다 더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듯한 느낌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낮에 불편하거나 화가 날 때도 그런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과거의 기억 중에 영상은 없지만 음성으로만 기억나는 몇 가지를 대상으로 자가세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심한 욕설들입니다. 예를 들어 "이 병신 중에 상병신같은 새끼야..." 라든가 "이 밥차두같은 새끼야...", "이 식충이야..." 와 같은 말들인데, 어린 아이에게 해 줄 경우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건전한 욕설이죠. (된장)

그저께 저는 자아존중감이 심하게 낮아서 수치심도 많이 느끼고 죄책감도 많이 느끼는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고 나를 드러내는 상황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그런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는 중간 결론은 내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늘 낮에 생활 중에 느낀 불편함과 연관지어 이 욕설의 음성 기억을 다루어보고자 했습니다.

음성 데이터만 있어도 아직도 생생합니다. 떠올리니까 금방 가슴이 조여들고 불안해지네요. 순간 수용확언을 안한 것이 생각나서 수용확언을 하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지난 달에 세션에서 다루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 기억은 두번째 세션을 받을 때 했던 것인데 갑자기 왜 이게 떠오르지? 의아했습니다.

그 내용은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화가 나서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일입니다. 어머니는 안계셨고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스스로 한탄하시다가 저와 동생에게 너희 엄마는 나가버렸으니 너희를 고아원에 보내겠다, 아버지는 너희를 키울 수 없으니 가서 동생하고 잘 살아라 라고 하시던 사건의 기억입니다.

저의 무의식이 이제야 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인지... 그 날의 기억 중에 잊혀졌던 부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 이럴 수가. 맞아, 그런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하다가 집중하면서 기다리니 조금 더 또렷해지고 차츰 여러가지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학대에 못이겨 집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돌아와 박살난 살림들을 보고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옆집 아줌마에게도 물어보고 동네 골목길을 해매고 다녔더랬습니다. 이 기억이 왜 지금 떠오르지? 이 기억이 떠오르자 폭발하듯이 울음이 났습니다. 그때는 안 울었던 것 같은데... (이런 젠장, 불쌍한 놈 같으니... 저 녀석을 어쩌면 좋으냐 ㅠㅠ)

옆집 아주머니가 저희를 재워주시고 밥도 주셨던 기억, 밤새 뒤척였던 기억, 어머니는 다음날 돌아오셨습니다. 저런 인간하고 살 수 없지만 아이들 때문에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저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는 하지 못하신 것 같네요. 하지만 어머니도 정말 고난스런 삶을 사셨을 것이고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패턴으로 인해 고난을 자초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오늘 낮에 직장에서 제가 화도 나고 많이 불편했던 것처럼요. 아뭏든 돌아오신 것은 그나마 저의 인생에 다행이고 감사드릴 일입니다. 모성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어머니를 찾아 골목길을 달리던 나를 기억하니 불안함, 두려움, 외로움, 슬픔 등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가장 강했던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었던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것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전에 세션할 때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측은함이 느껴졌고 그것을 중화했었어요. 그런데 이 기억이 묻혀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내가 이 기억을 묻어둔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이제 또 궁금해지는군요. 생각해도 잘 알 수 없군요. 뭔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단순한 기억의 오류인가? ㅎㅎ

오늘은 좀 심하게 우느라고 새로운 영상은 창조하지 못했고 마냥 위로만 하다가 마쳤습니다. 이런 모습을 누가 보면 참 이상한 놈이라고 했겠죠? ㅎㅎ 생각만 해도 ?팔리네요. 차라리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존 내시처럼 그 아이를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잘 해주고 싶다는 황당한 생각도 드는군요.

요즘 제가 착한 아빠가 되어가면서 애들이 저에게 말도 많이 해주고 와서 달라 붙기도 합니다. 이렇게 개과천선한 답으로 내 무의식이 기억의 창고를 하나 열어준 것일까요? ㅎㅎㅎ 별 얘기 아니지만 저에게는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시고 편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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