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느낀 측은함

by 달봉스님 posted Apr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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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종류 개인세션
참가이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감, 불안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개인 세션을 받고 나면 몸이 많이 지치더군요. 집에 돌아가서 아주 푹 자게 됩니다.

4월 22일에 세번째 개인 세션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고 하면 항상 레파토리처럼 떠오르는 기억의 목록이 있습니다. 크게 의식하지는 않지만, 마음 한편에서 왜 이 기억들은 나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션에서 궁금함의 하나가 풀렸네요.

초등학교 3학년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안의 모든 살림이 부서져 폐허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안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쪽마루에 앉아 술을 드시고 계셨고 저와 동생을 불렀습니다. 저는 6살 동생과 아버지 앞에 서서 '이제 너의 엄마는 나가버렸고 내가 너희를 키울 수 없으니 목포의 고아원으로 보내겠다. 동생과 잘 살아라.'란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억입니다. 기억을 되살려도 별 감정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몰입을 하자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평상시에 예상할 수 있었던 감정과는 약간 다른 것이어서 저도 다소 놀라왔습니다. 나타난 감정은 하나가 아닌 여러가지가 있었죠. 한번 열거해 보면요.
  • 전에도 그런 폭력적인 사건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일어나서 다행이다.
  • 엄마는 갈 데도 없을 텐데 어디 가셨을까. 걱정된다.
  • 엄마 혼자서 감당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불쌍한 엄마.
  • 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에서 어찌 살 것인가. 동생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다칠지 모르니 계속 쫓아다녀야 한다. 불안하고 걱정된다.
  • 아버지는 왜 저럴까. 저러지 않을 수 없나. 나쁘다. 우리를 힘들게 한다.
  • 아버지는 혼자 어떻게 살아가나. 밥은 누가 해주나. 불쌍하다.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신선생님께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주신 것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불우했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측은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좀 의외였다라고 느껴진 부분이었고요. 제가 얼마나 그동안 무감각하게 살았는지 일깨워주었습니다. 아버지를 인간으로서 깊이 이해한 경험이 없었던 거죠. 물론 성장하면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했겠지만, 진정으로 이해한 경험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이 기억의 조각을 계속 의식에 밀어올려주면서 무엇을 계속 촉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고,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요.

세션의 후반부에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부분이 있었고... 오늘은 울지 않겠거니 했는데 또 눈물이 났네요.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가슴이 또 묵지근하고 눈물이 글썽하네요.

제가 고쳐보고자 하는 많은 심리적 문제들은 증상도 다양하고 원인도 다양할 겁니다. 그 중에서 아버지와 관련되었던 부분은 상당히 클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아버지의 삶과 감정, 생각, 경험들 ... 알 수 있는 한 모든 것들은 이해하고 맺힌 것을 푸는 작업은 곧 제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과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당한 일인데 이런 지당한 것을 지금 알다니... 참 어리석습니다. 지금껏 아이처럼 나만 힘들다고 투정만 부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                                                                *                                                                *

제가 해결하고픈 일 중의 하나는 발표시의 공황증세입니다. 금요일 오전에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요일부터 예비 불안이 나타나서 EFT로 몇차례 두들겨주었습니다. 금요일에도 역시 발표불안이 심하게 나타났는데 예전보다는 약간 누그러졌습니다.

대중 앞에 서니 역시 가슴이 심하게 뜁니다. 목소리도 떨리고 입속이 마르고요. 하지만 분명히 전보다 증상이 누그러졌음이 느껴지네요. 몇 명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호의가 느껴지기도 했구요.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마쳤고 마치고 난 후의 부끄러움이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나아졌다고 크게 기쁘지는 않군요. 약간의 수치심과 담담함.

발표시의 증상들은 좋아지든지 더 나빠지든지 그냥 그대로 둘까 합니다. 증상 자체가 없어졌는지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 보다는 내 안의 내가 마음 위로 올려보내주는 메시지들을 읽고 맺힌 것들을 풀어주는 작업을 계속 해야겠습니다. 그 작업은 곧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만져주는 일과 같은 일일 겁니다. 나는 영향을 받아왔고 또 영향을 지금도 계속 주고 있는 존재일테니까요.

지금 문득 기억이 하나 떠오르는군요.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두 얼굴의 사나이'. ㅎㅎ. 그 중에서 데이빗 데너 박사라는 사람이 사건이 일단락 된 뒤 가방을 메고 쓸쓸하게 떠나는 장면(손을 흔들며). 이 장면도 자주 떠오르는 레파토리예요. 공책에 적어두고 나중에 살펴봐야겠네요.

이상 저의 부족한 소감이었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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